김황식 (법조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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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김황식은 대한민국의 법조인으로, 대법관, 감사원장, 국무총리를 역임했다. 전라남도 장성군 출신으로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하고 사법시험에 합격한 후 판사로 재직했다. 2005년부터 2008년까지 대법관, 2008년부터 2010년까지 감사원장을 지냈으며, 2010년 국무총리로 임명되어 2013년까지 재임했다. 국무총리 재임 중 한일 군사협정 비밀 처리, 병역 면제, 과거 사회주의 옹호 발언 등으로 논란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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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황식 (법조인) - [인물]에 관한 문서 | |
---|---|
기본 정보 | |
존칭 | 각하 |
이름 | 김황식 |
원어 이름 (언어) | ko |
로마자 표기 | Gim Hwangsik |
한자 표기 | 金滉植 |
출생일 | 1948년 8월 9일 |
출생지 | 장성군, 전라남도, 남한 |
본관 | 광산(光山) |
부모 | 아버지 김원만, 어머니 나아지 |
배우자 | 차성은 |
자녀 | 1남 1녀 |
종교 | 개신교(예장통합) |
학력 | |
출신 학교 | 서울대학교 (LLB) |
주요 경력 | |
전직 | 대법관 |
전직 | 감사원장 |
전직 | 국무총리 |
대한민국 국무총리 | |
직책 | 제41대 대한민국 국무총리 |
대통령 | 이명박 |
임기 시작 | 2010년 10월 1일 |
임기 종료 | 2013년 2월 26일 |
전임자 | 정운찬 윤증현 (대행) |
후임자 | 정홍원 |
대한민국 감사원장 | |
직책 | 제21대 대한민국 감사원장 |
임기 시작 | 2008년 9월 8일 |
임기 종료 | 2010년 9월 30일 |
기타 | |
호암상 | 호암상 수상 |
2. 생애
김황식은 전라남도 장성군에서 태어났고, 광주제일고등학교와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했다. 사법시험 합격 후 여러 곳에서 판사로 재직했으며, 2000년 ~ 2003년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 2004년 광주지방법원장, 2004년 ~ 2005년 법원행정처 차장을 거쳐 2005년 ~ 2008년 대법관으로 재직 중 2008년 9월 제21대 감사원장으로 임명되어 2010년 9월까지 역임하였다.
서울형사지법 합의23부 부장판사로 재직할 때인 1994년 7월 27일 「노동계급 해방을 위해 투쟁하는 사회주의자들」에 가입, 활동한 혐의로 구속기소된 이정임 피고인(24·여)에 대한 선고공판에서 『자본주의가 현실적으로 겪고 있는 자본집중, 실업, 빈곤, 제국주의전쟁 등 많은 모순과 병폐를 극복하기 위한 대안으로 사회주의가 출현했다』고 전제하면서 『헌법 제9장에서 경제규제와 조정및 사기업의 국·공유화를 허용한 것은 사회주의적 요소를 도입한 것입니다 이처럼 인간의 이기심을 억제하고 박애정신을 실현하려는 노력을 통해 자본주의는 성공의 기틀을 마련했다 』고 하는 등 법정에서 장시간에 걸쳐 사상 강연을 하기도 했다.[15]
김황식은 2010년 김태호 국무총리 내정자의 자진사퇴 후 유력 후보자로 거론되다가[16] 9월 16일 국무총리 후보로 지명되었고, 국회 임명동의를 위한 인사청문회는 9월 29일 열렸으며, 10월 1일 임명 동의안이 가결되어 총리 임명장이 수여되었다.
2012년 6월 26일 국무회의 즉석 안건으로 처리된 '한일 군사협정(일명 한일 정보 보호 협정)'을 비밀리에 날치기 한 것이 밝혀져 127명의 의원이 해임건의안을 제출했지만 부결되었다.
그는 장성군에서 태어나 독일 마르부르크 대학교에서 법학을 공부하고 서울대학교를 졸업했다. 사법시험에 합격한 후 여러 지역 법원에서 판사로 근무했다. 2005년부터 2008년까지 대법원 대법관을 역임했다. 2008년 9월부터 감사원장을 지냈다.[2] 2010년 9월 16일, 새로운 국무총리로 지명되었다. 9월 29일 국회 인사청문회를 거쳐 10월 1일 국무총리로 임명되었다. 김황식은 4년 임기의 감사원장직을 중도 사퇴했는데, 이회창에 이어 감사원장직에서 바로 국무총리로 임명된 두 번째 인물이다.
전라남도 장성군 출생. 서울대학교 법학과 출신. 사법시험에 합격한 후 여러 곳에서 판사로 재직하고, 대법관 등을 거쳐 2008년 감사원 감사원장에 취임.
2. 1. 국무총리 임명
김태호 국무총리 내정자가 자진사퇴한 후,[16] 2010년 9월 16일 김황식은 국무총리 후보로 지명되었다.[2] 정운찬 국무총리가 2010년 7월 사퇴를 표명하면서 후임으로 거론되었으나 고사했다.[6] 국회 임명동의를 위한 인사청문회는 9월 29일 열렸으며,[2] 10월 1일 임명 동의안이 가결되어 총리 임명장이 수여되었다.[16] 전라남도 출신으로는 처음[7]이며, 이회창에 이어 감사원장직에서 바로 국무총리로 임명된 두 번째 인물이다.[2]김황식은 서울형사지법 합의23부 부장판사로 재직할 때인 1994년 7월 27일 「노동계급 해방을 위해 투쟁하는 사회주의자들」에 가입, 활동한 혐의로 구속기소된 이정임 피고인(24·여)에 대한 선고공판에서 『자본주의가 현실적으로 겪고 있는 자본집중, 실업, 빈곤, 제국주의전쟁 등 많은 모순과 병폐를 극복하기 위한 대안으로 사회주의가 출현했다』고 전제하면서 『헌법 제9장에서 경제규제와 조정및 사기업의 국·공유화를 허용한 것은 사회주의적 요소를 도입한 것입니다 이처럼 인간의 이기심을 억제하고 박애정신을 실현하려는 노력을 통해 자본주의는 성공의 기틀을 마련했다 』고 하는 등 법정에서 장시간에 걸쳐 사상 강연을 하기도 했다.[15]
2012년 6월 26일 국무회의 즉석 안건으로 처리된 '한일 군사협정(일명 한일 정보 보호 협정)'을 비밀리에 날치기 한 것이 밝혀져 127명의 의원이 해임건의안을 제출했지만 부결되었다.
2. 2. 국무총리 재임 중 활동 및 논란
김황식은 전라남도 장성군 출신으로, 광주제일고등학교와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했다. 사법시험 합격 후 여러 법원에서 판사로 재직했으며, 2005년부터 2008년까지 대법관을 역임했다. 대법관 재직 중 2008년 9월 제21대 감사원장으로 임명되어 2010년 9월까지 재직하였다.[15] 2010년 김태호 국무총리 내정자가 자진사퇴한 후, 김황식은 유력한 총리 후보로 거론되었고,[16] 9월 16일 국무총리 후보로 지명되었다. 국회 인사청문회는 9월 29일에 열렸으며, 10월 1일 임명 동의안이 가결되어 총리로 임명되었다.서울형사지법 합의23부 부장판사로 재직하던 1994년 7월 27일에는 '노동계급 해방을 위해 투쟁하는 사회주의자들' 사건 피고인에게 자본주의의 모순과 사회주의의 출현 배경, 그리고 헌법의 사회주의적 요소 도입 등에 대한 장시간의 사상 강연을 하기도 했다.[15]
2012년 6월 26일에는 국무회의에서 즉석 안건으로 상정된 '한일 군사협정(일명 한일 정보 보호 협정)'을 비밀리에 처리하여 논란이 되었다. 이로 인해 127명의 국회의원이 해임건의안을 제출했지만 부결되었다.
2011년 4월 7일 국회 답변에서 김황식은 동일본대지진으로 인한 후쿠시마 원전 사고 피해와 관련하여, 일본 정부가 방사성 물질 포함 물의 해양 방출 사실을 사전에 한국에 통보하지 않은 것에 대해 외교적 무능함을 지적하는 의원에게 일본 정부의 무능함을 언급했다.[11] 또한, 독도 문제에 대해서는 현실적으로 경찰 주둔이 적절하지만, 상황에 따라 군대 주둔도 고려하여 한국의 영토임을 대내외에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12]
2. 3. 퇴임 후
2010년 김태호 국무총리 내정자의 자진사퇴 후 유력 후보자로 거론되다가[16] 9월 16일 국무총리 후보로 지명되었고, 국회 임명동의를 위한 인사청문회는 9월 29일 열렸으며, 10월 1일 임명 동의안이 가결되어 총리 임명장이 수여되었다.2012년 6월 26일 국무회의 즉석 안건으로 처리된 '한일 군사협정(일명 한일 정보 보호 협정)'을 비밀리에 날치기 한 것이 밝혀져 127명의 의원이 해임건의안을 제출했지만 부결되었다.
2014년 3월 16일, 같은 해 6월에 예정된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의 하나로 실시되는 서울특별시장 선거 출마를 선언했으나[8], 새누리당 서울시장 후보로 선출되지 못했다.[9]
2019년 3월, “더 나은 미래를 위한 반기문재단” 재단 발기인 대회에 참석했다.[10]
3. 논란 및 비판
김황식은 대법관 재직 시절 '진실과 화해를 위한 과거사 위원회(진실화해위)'에서 유신시절 긴급조치 판결에 참여했던 판사 492명의 실명을 공개했는데, 현직 대법관, 판사들이 포함되어 있어 비난을 면하기 어려웠다.[18]
후쿠시마 제1 원자력 발전소 사고 이후 빗물의 방사능 오염 가능성에 대해 일축하며 인체에 안전하다는 발언을 해, 일부 네티즌들이 비판하였다.[19]
2012년 7월 21일 이상호 기자의 < 발뉴스 >를 통해 공개된 청와대의 '문화권력 균형화 전략' 문건에 대해 김황식 국무총리는 "처음 듣는 말"이라고 밝혔다. 민주통합당 정청래 의원은 2012년 7월 23일 오전 대정부질의에서 '문화권력 균형화 전략' 문건에 대해 "청와대 기획관리비서관실에서 작성한, 소위 문화권력 균형화 전략, 좌파 문화예술인사들 숙청하고자 하는 문건"이라며 "한국판 문화대혁명을 하자는 것이냐? 여기에 연루된 사람들 조사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문화권력 균형화 전략'은 청와대가 민정수석실, 국가정보원, 기획재정부, 방송통신위원회와 같은 국가기관은 물론 일부 언론을 동원해 임기 5년간 문화계 인사들에 대한 강제 퇴출을 주도한 내용이 담긴 내부 문건으로, 좌파 문화권력 척결 방안과 함께 이른바 '건전세력' 양성을 위한 대안을 담고 있었다. 청와대 시각에서 좌파문화 단체들의 지원을 끊거나 축소하고 우파문화 단체들을 육성하자는 것이었다.
또한 기업과 손을 잡고 우파 영화를 제작해야 한다는 내용과 메이저 신문과 협력해 '좌파 행적을 밝히는 기획물'을 연재한다는 계획도 포함돼 있어 충격을 줬다. 청와대와 행정기관, 기업과 보수언론이 문화예술계 전반을 통제하겠다는 의도가 담겨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에 대해 김황식 총리는 "처음 듣는 말"이라며 "작성주체가 누구인지, 어떤 내용을 어떤 경위로, 어떻게 집행된 것인지 잘 알지 못한다"고 말했다. 이에 정 의원이 "지금 알아봐야 하는 것 아니냐"고 묻자 김 총리는 "알아볼 수는 있지만 실정법에 위반되는지 위법사항을 따져봐야 한다"고 말했다.[20]
김황식은 1972년 갑상선 질환을 이유로 2년간의 병역 의무를 면제받았다.[3] 그의 진단을 내린 병원은 그의 형이 운영하는 곳이었다. 1973년에는 왼쪽 눈과 오른쪽 눈의 시력 차이가 "극심하다"는 이유로 다시 면제받았는데, 이는 그가 10대 내내 배드민턴을 고수준으로 즐겼다는 사실과 배치되는 것이었다.[3] 이러한 모순점들은 그가 국무총리 후보자로 인준 청문회를 받는 과정에서 주요 논쟁거리가 되었다.
2011년 4월 7일 국회 답변에서, 동일본대지진으로 인한 피해를 입은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에서 방사성 물질이 포함된 물이 바다로 방출될 때 일본 정부로부터 사전 연락이 없었던 것에 대해, 어떤 의원이 한국의 외교적 무능함을 지적하자, 한국이 아니라 일본이 무능하다고 답변했다.[11]
또한,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 독도에는 현실적인 면에서 경찰을 주둔시키는 것이 적절하지만, 상황 전개에 따라 강력한 군대 주둔도 고려하여 대내외적으로 한국의 영토임을 명시하는 것을 검토할 가치가 있다고 밝혔다.[12]
3. 1. 병역 면제 논란
김황식은 1972년 갑상선 질환을 이유로 2년간의 병역 의무를 면제받았다.[3] 그가 진단을 받은 병원은 그의 형이 운영하는 곳이었다. 1973년에는 왼쪽 눈과 오른쪽 눈의 시력 차이가 극심하다는 이유로 다시 병역을 면제받았는데, 이는 그가 10대 내내 배드민턴을 고수준으로 즐겼다는 사실과 배치된다.[3] 이러한 모순점들은 그가 국무총리 후보자로 인준 청문회를 받는 과정에서 주요 논쟁거리가 되었다.3. 2. 긴급조치 판결 참여
1975년 5월 13일부터 시행된 긴급조치 9호로 인해 1975년 유신반대 운동으로 고려대 사학과에서 제적되었던 민주통합당의 설훈 의원이 1977년 긴급조치 9호 위반으로 징역 2년 6개월을 선고받았는데, 당시 초년생 판사였던 김황식은 재판합의부에서 그 재판에 배석판사로 관여하여 긴급조치 조항과 형법의 조항을 근거로 판결을 내렸다.[17]그로부터 35년 뒤인 2012년 9월 6일에 설훈과 김황식은 대정부질문에서 유신체제에 대한 설전을 벌였다. 설훈이 유신체제 당시의 긴급조치 9호 위반으로 징역을 살았던 자신의 과거와 당시 판결에 관여했던 김황식을 언급하며 그에 대한 생각을 묻자, 김황식은 "자신을 포함한 사법부가 죄송하게 생각하며 반성함을 수차례 밝혔다."고 말했고, 이에 설훈은 즉각 "사과를 받아들이겠다."고 답하였다.[17] 김황식은 대법관 재직 시절 '진실과 화해를 위한 과거사 위원회(진실화해위)'에서 유신시절 긴급조치 판결에 참여했던 판사 492명의 실명을 공개했는데, 현직 대법관, 판사들이 포함되어 있어 비난을 면하기 어려웠다.[18]
3. 3. 사회주의 옹호 발언
김황식은 대법관 재직 시절 '진실과 화해를 위한 과거사 위원회(진실화해위)'에서 유신시절 긴급조치 판결에 참여했던 판사 492명의 실명을 공개했는데, 현직 대법관, 판사들이 포함되어 있어 비난을 면하기 어려웠다.[18]김황식은 후쿠시마 제1 원자력 발전소 사고 이후 빗물의 방사능 오염 가능성에 대해 일축하며 인체에 안전하다는 발언을 했다. 이에 일부 네티즌들이 비판하였다.[19]
2012년 7월 21일 이상호 기자의 < 발뉴스 >를 통해 공개된 청와대의 '문화권력 균형화 전략' 문건에 대해 김황식 국무총리는 "처음 듣는 말"이라고 밝혔다. 민주통합당 정청래 의원은 2012년 7월 23일 오전 대정부질의에서 '문화권력 균형화 전략' 문건에 대해 "청와대 기획관리비서관실에서 작성한, 소위 문화권력 균형화 전략, 좌파 문화예술인사들 숙청하고자 하는 문건"이라며 "한국판 문화대혁명을 하자는 것이냐? 여기에 연루된 사람들 조사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문화권력 균형화 전략'은 청와대가 민정수석실, 국정원, 기획재정부, 방송통신위원회와 같은 국가기관은 물론 일부 언론을 동원해 임기 5년간 문화계 인사들에 대한 강제 퇴출을 주도한 내용이 담긴 내부 문건으로, 좌파 문화권력 척결 방안과 함께 이른바 '건전세력' 양성을 위한 대안을 담고 있었다. 청와대 시각에서 좌파문화 단체들의 지원을 끊거나 축소하고 우파문화 단체들을 육성하자는 것이었다.
또한 기업과 손을 잡고 우파 영화를 제작해야 한다는 내용과 메이저 신문과 협력해 '좌파 행적을 밝히는 기획물'을 연재한다는 계획도 포함돼 있어 충격을 줬다. 청와대와 행정기관, 기업과 보수언론이 문화예술계 전반을 통제하겠다는 의도가 담겨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에 대해 김황식 총리는 "처음 듣는 말"이라며 "작성주체가 누구인지, 어떤 내용을 어떤 경위로, 어떻게 집행된 것인지 잘 알지 못한다"고 말했다. 이에 정 의원이 "지금 알아봐야 하는 것 아니냐"고 묻자 김 총리는 "알아볼 수는 있지만 실정법에 위반되는지 위법사항을 따져봐야 한다"고 말했다.[20]
4. 경력
1972년 제14회 사법시험에 합격하였다. 1974년 9월부터 1977년 1월까지 서울민사지방법원 판사를, 1977년 1월부터 1980년까지 서울형사지방법원 판사를 역임하였다. 1980년부터 1981년까지 대전지방법원 서산지원 판사로 근무하였다. 1983년 서울민사지방법원 판사, 1983년부터 1985년까지 법원행정처 법정심의관을 역임하였다. 1985년 3월부터 1988년 7월까지 서울고등법원 판사, 1988년부터 1989년까지 대법원 재판연구관으로 근무하였다.
1989년 4월부터 1991년 2월까지 전주지방법원 부장판사, 1991년 2월부터 1993년 3월까지 서울가정법원 부장판사를 역임하였다. 1991년 2월부터 1993년 2월까지 법원행정처 법정국장을 겸임하였다. 1996년 2월부터 1997년 2월까지 광주고등법원 부장판사, 1997년 2월부터 2000년 2월까지 대법원 선임재판연구관을 역임하였다. 2000년 2월부터 2004년 2월까지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장, 2000년 2월부터 2003년 9월까지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를 역임하였다.
2004년 2월부터 2005년 2월까지 광주지방법원장을 역임하였다. 2005년 2월부터 11월까지 법원행정처 차장을 지냈다. 2005년 11월부터 2008년 9월까지 대법원 대법관을 역임하였다. 2008년 9월부터 2010년 9월까지 제21대 감사원장을 지냈다. 2009년 10월 아시아감사원장회의 총장을 역임하였다.
2010년 10월부터 2013년 2월까지 제41대 국무총리를 역임하였다. 2014년 3월부터 2017년 2월까지 새누리당 당원으로 활동하였다. 2014년 9월부터 2015년 7월까지 2015 광주하계유니버시아드대회조직위원회 공동위원장을 맡았다. 2017년 2월부터 2019년 2월까지 자유한국당 당원으로 활동하였다.
2017년 7월부터 안중근의사숭모회 이사장을 맡고 있다. 2018년 12월부터 호암재단 이사장, 2019년 4월부터 보다나은미래를위한 반기문재단 고문, 2020년 8월부터 삼성문화재단 이사장을 역임하고 있다. 서울대학교 총동창회 고문, 변호사김황식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로도 활동하고 있다. 2023년 2월부터 5월까지 6·25 전쟁 정전 70주년 사업 고문위원을 맡았으며, 국민통합위원회 고문단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2023년 6월부터 이승만대통령기념재단 이사장과 이승만대통령기념관 건립추진위원회 위원장을 맡고있다.
5. 가족 관계
아버지 김원만은 한학자이며, 장성향교의 전교(향교를 대표해 각종 행사를 주관하는 직책)를 역임했다. 큰형 김광식은 의사로 우성병원 원장을 지냈다. 둘째 형 김강식은 농촌진흥청 차장, 한국육류수출협회 회장을 역임했으며, 한국육류유통수출입협회 고문으로 있다. 셋째 형 김흥식은 장성군수를 지냈다.
큰누나 김효식은 교원으로 근무했다. 둘째 누나 김향식은 일진그룹 허진규 회장의 부인이다. 셋째 누나 김필식은 동신대학교 총장이다.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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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wang Sik Kim
https://www.hoamfoun[...]
2024-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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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ief auditor tapped as prime minis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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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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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th Korea's draft MC Catch-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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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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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광복 이후 현대 광산김씨 > 광산김씨 인물사 {{!}} 광산김씨대종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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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고] 중문학자 허세욱 교수 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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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首相内定の金滉植氏「公正社会構築に最善尽く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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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首相候補に金滉植監査院長、李大統領が正式指名
http://japanese.yon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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キム・ファンシク "4大河川事業は適切な事業" 擁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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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총리후보에 김황식 감사원장 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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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_자치 | 사회
1994-0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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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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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김황식 총리, "청와대, 문화계 좌파 척결 모르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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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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